김수찬 같이 삽시다 남진보고 트로트 가수 데뷔 비화 집안 공개
김수찬 같이 삽시다 남진보고 트로트 가수 데뷔 비화 집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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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찬, ‘같이 삽시다’에서 털어놓은 남진 덕분에 시작된 트로트 인생 이야기
KBS1 예능 ‘황신혜의 같이 삽시다’ 보신 분들이라면, 최근 출연한 가수 김수찬 편이 꽤 오래 기억에 남으셨을 거예요. 화면만 봐도 현장 분위기가 논밭이든 어디든 금세 콘서트장으로 바뀌는데, 그 한가운데에서 본인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어요. 저도 방송을 보면서 “아, 이 사람은 진짜 트로트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는데요, 오늘은 그 방송에서 공개된 남진과의 인연, 데뷔 비화, 집안 이야기까지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중학생 때부터 가슴 뛰게 만든 트로트 반주
‘같이 삽시다’에서 황신혜가 “언제부터 트로트를 시작했냐”고 묻자, 김수찬이 망설임 없이 중학생 때 이야기를 꺼냈어요. 어느 날 공연장을 갔는데 트로트 곡 반주가 들리는 순간, 심장이 막 뛰고 설레고 흥분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일반 가요보다 트로트에 더 마음이 끌렸고,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어요.
이 부분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공감이 갔어요. 저도 어릴 때 어른들 모임에 따라가면 트로트 반주만 나와도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라서, 그 공기를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흥이 느껴졌거든요. 김수찬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남들은 아이돌 노래에 열광하던 시기에, 그는 트로트 반주 하나에 마음이 요동쳤다고 하니 그때 이미 방향이 정해져 있었던 셈이죠.
그렇게 중학생 때부터 트로트 곡들을 따라 부르며 감정을 쌓아가다가, 결국 본격적으로 “트로트 가수”라는 꿈을 품게 된 건 남진의 무대를 보고 난 뒤였다고 합니다.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말하는 걸 보니,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린 결정적인 순간이었겠죠.
남자가 봐도 섹시했던 남진, 꿈의 시작
김수찬이 여러 인터뷰와 ‘같이 삽시다’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한 포인트가 바로 “남진 선배님 무대”예요. TV로 우연히 남진의 ‘나야 나’ 무대를 보게 됐는데, 남자가 봐도 너무 멋있고 섹시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돌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무대 위의 남진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이후로는 거의 ‘남진 연구생’처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루 네 시간씩 남진의 노래와 무대를 연구하고, 말투와 제스처까지 따라 하면서 트로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여러 방송에서 털어놨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결혼식 축가로 남진의 ‘둥지’를 불렀고, 그 무대를 본 교장선생님이 “얘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 인천 청소년 가요제를 나가 보라고 추천해줬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 인천 청소년 가요제에서 ‘나야 나’를 불러 트로트 최초로 대상을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방송을 통해 알려졌죠. 듣고 있으면 뭔가 만화 같은 스토리예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미친 듯이 연습하더니, 학교 축가에서 인정받고, 가요제에서 대상까지 타게 되는 흐름이 참 자연스러우면서도 드라마틱합니다. 저도 예전에 학교 행사에서 우연히 맡은 역할로 칭찬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런 경험이 이상하게 진로 선택에 영향을 주더라고요. 김수찬에게도 그 대상 수상이 “아, 나는 이 길로 가야겠구나” 하는 확신을 주는 순간이었을 것 같아요.
그 기세를 이어서 그는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게 되는데, 이 무대가 나중에 남진과의 운명적인 연결 고리가 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하다 보니 결국 그 사람에게 닿게 되는 과정이, 보는 입장에서도 묘하게 뭉클했어요.
‘전국노래자랑’ 흑역사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날
‘같이 삽시다’에서 가장 웃음과 동시에 감동을 줬던 이야기가 바로 ‘전국노래자랑’ 에피소드였어요. 김수찬은 그때를 “제 흑역사”라고 표현하면서도, 그 영상 덕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당시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 참가하기 위해, 어머니와 하루 전날 기차를 타고 내려가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무대에 올랐다는 이야기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어요. 방송에서 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려지잖아요. 바닷가 근처의 약간 습한 공기, 찜질방 특유의 묘한 피곤함, 그리고 그 다음날 전국 방영되는 무대 앞에 선 긴장감까지. 김수찬도 그때를 떠올리며 “엄마랑 같이 내려가서 준비했다”고 말하는데, 단순한 경연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만든 추억 같아서 더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무대에 올라서는 당연히 남진의 노래를 선곡해 열창했죠. 그는 그 무대를 “대국민 오디션”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그 영상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SBS 추석 특집 예능에도 출연하게 되고, 그 방송을 남진의 따님이 보면서 “아빠, 노래를 기가 막히게 따라 하는 아이가 있다”고 알려준 게 남진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흑역사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인생 최대의 기회였던 셈이에요.
‘같이 삽시다’에서는 “남진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에 나간 제 흑역사를 보시고, 관계자를 통해 연락하셨다”고 유쾌하게 표현하면서, 인천 콘서트에 초대받았을 때 꿈만 같았다고 여러 번 강조했어요. 방송을 보면서 저도 “내가 예전에 했던 어떤 도전도, 언젠가 누군가의 눈에 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은 들더라고요.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작은 용기는 주는 것 같아요.
인천 콘서트 게스트, 무명 시절이 없었다는 이유
인천에서 열린 남진 콘서트에 처음 초대받았을 때, 김수찬은 하얀색 털옷을 입고 등장한 남진의 후광이 장난 아니었다고 회상했어요. 그 장면을 ‘같이 삽시다’에서 이야기할 때, 본인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눈빛이 반짝이더라고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그 이후 1~2년 정도 남진 콘서트의 게스트로 서게 되면서 큰 무대에서 무대 담력을 쌓게 됩니다.
“제 노래도 없는데, 큰 무대를 같이 하게 했다”고 말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보통은 자기 곡이 있어야 콘서트 게스트로 설 텐데, 남진은 아마도 재능과 가능성을 보고, 정식 데뷔 이전부터 무대를 함께 나누게 한 것 같아요. 김수찬은 이 경험 덕분에 웬만한 무대에서는 긴장을 안 하게 됐다고 말하며, 무명 시절이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2012년에 싱글 ‘오디션’을 냈지만,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14년 JTBC ‘히든싱어’ 남진 편 출연 이후였고, 그 사이에는 본인이 말하는 “무명 7년”의 시간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시간을 완전한 무명으로 여기지 않아요. 남진 콘서트에서 계속 무대를 경험하고, 각종 방송과 행사에서 트로트 무대를 이어가며 나름대로 자신만의 경력을 쌓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태도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힘이 돼요. 저도 어떤 일을 하면서 “아직 아무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무명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김수찬처럼 “그래도 내 기준으로는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가 “저는 무명이 없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할 때, 그 속에는 스승과의 인연, 수많은 무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작은 자부심이 함께 담겨 있더라고요.
외가에서 내려온 음악 DNA, 집안 이야기
‘같이 삽시다’에서는 집안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황신혜가 “집에서 누가 노래를 잘하냐”고 묻자, 김수찬은 자연스럽게 외가 쪽 이야기를 꺼냈어요. 큰 이모가 ‘제2의 주현미’로 한 번 앨범을 내고 활동을 시도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도 노래를 굉장히 잘하신다고 했죠.
이 얘기를 들으면서, 트로트가 단순히 방송을 통해 배운 장르가 아니라 집안의 공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음악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명절 때나 가족 모임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노래가 오가고, 어른들이 흥겹게 트로트를 부르면 아이들은 그걸 따라 부르며 자라잖아요. 김수찬도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트로트 특유의 정서와 맛을 어릴 때부터 몸으로 익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는 건, 어릴 때 꿈이 처음부터 가수는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에서는 초등학교 때까지 개그맨이나 활발한 일을 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는데요, 실제로 말재주를 보면 이 말이 그냥 허언이 아니라는 게 느껴집니다. 입담과 순발력이 좋아서 예능에서 텐션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면, 개그맨을 꿈꿨다는 과거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죠.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남진의 무대를 보고 가수의 꿈으로 방향을 틀게 됩니다. 외가에서 내려온 음악 DNA, 어릴 적부터 몸에 밴 트로트 정서, 그리고 남진이라는 롤모델까지, 이렇게 퍼즐이 맞춰지면서 지금의 트로트 가수 김수찬이 완성된 셈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사람의 진로가 하나의 큰 사건만으로 결정되기보다는, 집안 분위기와 어린 시절 경험, 우연히 마주친 롤모델 같은 요소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습니다.
스승 남진과 ‘리틀 남진’에서 벗어나기까지
김수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별명이 바로 ‘리틀 남진’이에요. JTBC ‘히든싱어’ 남진 편에서 남진을 완벽하게 복사해내는 실력으로 단번에 눈도장을 찍으며, 이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죠.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롤모델이 남진이라고 밝히며, “트로트를 진심으로, 인간적으로, 개인적으로, 세계적으로 하고 싶다”는 포부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이 별명을 서서히 내려놓고, 본인 이름으로 서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드러냈어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는 ‘미스터트롯’ 무대에서 남진의 응원을 받으며 인생 무대를 만들었다고 회상하는데, 그 안에는 스승에 대한 존경과 함께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남진도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걸 말리다가, 실력이 충분히 갈고닦였다고 판단했을 때 “맘껏 펼치라”고 격려해줬다고 하니,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어 인생 은인에 가깝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 같아요.
‘같이 삽시다’에서도 김수찬은 남진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며, 무대 담력을 쌓게 해 준 은인이라고 거듭 표현했어요. 그럼에도 동시에, 이제는 자신만의 색이 분명한 트롯돌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역 후 첫 인터뷰들에서는 예능감과 무대 장악력을 앞세우면서, 남진을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모두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방송을 보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김수찬이 스승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과장된 감동 코드로 몰고 가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남진 선생님이 제 흑역사를 보시고 연락했다”, “하얀 털옷에 후광이 장난 아니었다”처럼 유머를 섞어 담담하게 얘기하는데, 그 안에 고마움과 존경이 자연스럽게 배어있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도 부담 없이 웃으면서, 동시에 그의 인생 이야기에 스며들게 되는 것 같아요.
김수찬이 ‘같이 삽시다’에서 보여준 데뷔 비화와 집안 이야기, 그리고 남진과의 인연까지 하나하나 짚어보면, 한 사람의 트로트 인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꽤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좋아하는 가수 한 명을 향한 팬심이 오랜 연구와 연습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 길 끝에서 실제로 스승과 함께 무대를 서게 된다는 스토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현대판 성장담 같아요. 앞으로도 그는 예능과 무대, 그리고 다양한 방송을 통해 본인만의 색깔을 더 뚜렷하게 보여줄 것 같은데, 그 출발점에 남진과의 인연과 외가에서 물려받은 음악 DNA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무대를 볼 때 느낌이 조금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